슬기로운 커피 공부/나라별 커피 story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

joanne0225 2026. 7. 16. 21:49

 

 

오스트리아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그 기원에 따라 두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문헌으로 확인되는 것은 1685년 1월 17일 빈에서 아르메니아 상인 요하네스 디오다토Johannes Diodato가 개점한 커피점입니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
- 요하네스 디오데토 -


요하네스 디오다토Johannes Diodato

오스트리아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요하네스 디오다토.

그는  Johannes Theodat요하네스 테오다트, Deodat데오다트, Owanes Astouatzatur 오하네스 아스토와차투르로 불리기도 합니다. 

1640년 경 이스탄불에 출생한 아르메니아계 인물입니다.

상인과 연락원으로 활동했고, 오스만 제국의 언어와 지역 사정에 밝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대적 배경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1세 초상화(1640~1705)

1) 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된 뒤 은 공급망이 무너짐. 

1669년 레오플드 1세 황제는 빈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추방했습니다.

당시 유대인 상인들은 국제 무역과 귀금속 유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추방되자 황실 조폐국에 필요한 은의 공급망이 갑자기 무너졌습니다. 

조폐국은 은을 받아 주화를 만드는 기관이었습니다. 따라서 은이 정기적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황실 화폐를 안정적으로 발행하기 어려웠습니다. 

빈에 남아있던 다른 상인들에게 은 공급을 맡겨보려 했지만, 이들도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조달하지 못했습니다. 

 

2) 디오다토의 무역회사가 은 조달을 맡다.

결국 황실은 오스만제국 지역과 교역 경험이 있던 디오다토의 무역회사에 은 공급 업무를 맡겼습니다.

디오다토는 1671년 3월부터 10월까지 오스만 제국 지역, 즉 오늘 날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은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그는 오스만 지역의 언어와 상업 관행을 알고 있었고,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적임자로 선택된 것입니다. 

하지만 디오다토 역시 황실 조폐국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만큼 은을 정기적으로 공급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즉, 이 사업은 완전한 성공은 아니지만, 디오다토가 황실을 위해 중요한 국제 무역 업무를 맡을 정도로 신뢰받는 상인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3) 황실 연락원으로도 활동한 디오다토

디오다토는 상인뿐 아니라, 황실의 연락원, 특사, 통역자 역할도 했습니다.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제국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면서도 외교와 무역을 계속했습니다. 

오스만 지역의 언어와 사정에 밝은 사람은 매우 귀했습니다. 

디오다토는 두 지역을 오가며 단순한 우편배달부를 너머, 황실의 중요한 문서와 정보를 전달하는 특사, 연락원 업무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공로의 보상으로 커피 판매 독점권을 받다. 

1685년 1월 17일, 레오폴트 1세는 디오다토의 연락원 활동과 황실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20년 동안 터키식 음료를 조제하고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원문에 나오는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das türkische Getränk, als Caffe, The und Scherbet, zu praeparieren”


이를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커피, 차, 셔벗과 같은 터키식 음료를 조제할 수 있는 권리”

 

이러한 특권은 오스만 제국과 빈의 무역, 아르메니아 상인들의 국제적 상업망, 궁정 외교와 정보 활동, 유럽에서 높아지던 동방 음료에 대한 관심의 결과로 조합된 결과이기도 하고, 디오다토가 오스만 지역에서 이미 커피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는 빈 사람들이 커피콩을 몰라서 버리려 할 때, 요하네스 디오다토는 커피를 상품으로 이해하고 조리할 줄 알았던, 동방 출신의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주소지로 RotenturmstraBe 14. 1010 Wien(로텐투름슈트라세 14번지, 1010 비엔나) 자리에 하르마르크트 Haarmarkt의 하헨베르크 가옥에서 커피와 차와 셔벗을 팔았습니다. 

 

 

 

커피하우스의 이름

디오다토가 1685년부터 운영한 커피하우스에는 고유상호는 없었습니다. 

일부 자료에서 Cave Gewölb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Gewölb는 아치형 천장을 가진 방, 상덤, 지하공간을 뜻하고 

Cave는 후대에 붙은 설명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카페 플로리안처럼 창업 당시 상호가 명확히 계승된 사례는 아닙니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


 

 

커피 메뉴

당시 디오다토가 허가 받은 메뉴는 세 종류입니다. 

Caffe커피, The차, Scherbet셔벗

 

 

 

커피

당시 커피는 오늘날의 에스프레소가 아니었습니다.

미세하게 분쇄한 커피를 물과 함께 금속 용기에 넣고 끓이는 오스만식 커피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커피가루를 물에 직접 넣고 끓인 후, 작은 잔에 진하게 제공했고,

잔 바닥에는 커피 침전물이 남았습니다. 

 

 

 

차와 셔벗

차 역시 당시 빈에서는 동방적이고 희귀한 음료였습니다.

셔벗은 오늘날의 아이스크림 셔벗과 다른, 물에 과일즙, 설탕, 허브, 꽃향 등을 섞은 청량음료를 의미합니다. 

당시 설탕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설탕은 귀한 상품이었습니다. 디오다토의 초기 가게가 정확히 어떤 배합을 사용했는지는 문헌상으로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내부 모습과 분위기

아쉽게도 디오다토의 실제 매장을 그린 1685년 동시대 실내화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 

기록에는 커피하우스를 단순한 나무 벤치가 놓인 방 하나 정도로 소규모 점포로 설명합니다. 

 

추정되는 내부 구성은

  • 아치형 천장 또는 두꺼운 석조 벽
  • 나무 벤치와 작은 탁자
  • 숯불이나 장작 화로
  • 구리 놋쇠 재질의 커피 주전자
  • 작은 잔과 서빙 쟁반
  • 차와 셔벗 재료를 보관하는 병
  • 동방산 상품이나 향신료를 보관하는 상자

 

수대 빈 카페의 대리석 테이블, 샹들리에, 신문대, 벨벳 의자, 피아노와는 전혀 다른공간이었습니다. 

 

우아한 문학카페라기 보다는 

오스만식 음료를 맛볼 수 있는 이국적인 소규모 음료점이자 상인들의 만남 장소

 

성격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방문자들은 아르메니아계와 그리스계 상인, 오스만 제국을 오가던 통역자와 외교 연락원, 궁정 관계자, 빈의 상인과 수공업자, 새로운 외국 음료에 관심이 있던 상류층, 하르마르크트 주변의 주민과 여행자였습니다. 

초기에는 커피 맛이 낯설었기 때문에 커피하우스가 곧바도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17세기 말부터 커피 영업자가 늘었고, 18세기에 들어 빈의 대표적인 도시문화로 성장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
(게오르크 프란츠 콜시츠키)


 콜시츠키의 유명한 전설
게오르크 프란츠 콜시츠키(Georg Franz Kolschitzky)는 오스만어와 오스만의 복식·풍습에 익숙했던 통역관이자 연락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683년 오스만군이 빈을 포위하자 도시 안에서는 식량이 줄어들고 시민과 수비대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콜시츠키는 오스만군의 복장으로 변장한 채 포위망을 빠져나가 외부의 구원군에게 빈의 위급한 상황을 알렸습니다. 이후 다시 오스만군의 포위선을 통과해 빈으로 돌아와 구원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1683년 9월, 폴란드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기독교 연합군이 오스만군을 격퇴했습니다. 이후 콜시츠키는 빈을 구하는 데 기여한 영웅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버려진 커피 자루와 ‘푸른 병’
오스만군이 퇴각한 뒤 진영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콩이 담긴 자루들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빈 사람들은 이를 낙타 사료로 생각해 버리려 했지만, 콜시츠키는 그것이 커피콩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그 커피 자루를 보상으로 받아 빈에서 커피하우스를 열었습니다. 그가 운영했다고 알려진 가게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Hof zur blauen Flasche


이는 우리말로 ‘푸른 병의 집’, ‘푸른 병 간판 아래의 집’ 또는 ‘블루 보틀 커피하우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Hof**는 단순히 궁정을 뜻하는 말이라기보다 당시 빈의 건물이나 가옥, 안뜰을 갖춘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설탕과 우유를 넣은 빈식 커피

콜시츠키의 전설은 커피하우스 개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시 오스만식 커피는 커피 가루를 물과 함께 끓여 마시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빈 사람들에게는 너무 쓰고 탁하며 낯선 음료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전승에서는 콜시츠키가 커피를 빈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찌꺼기를 걸러내고, 우유나 크림을 넣었으며, 꿀이나 설탕으로 단맛을 더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오스만식 커피보다 부드럽고 달콤한 빈식 커피가 만들어졌고, 후대의 **비너 멜랑주(Wiener Melange)**와 같은 우유 커피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다만 이 음료는 오늘날 한국에서 흔히 ‘비엔나커피’라고 부르는 **휘핑크림을 올린 아인슈페너(Einspänner)**와는 다릅니다. 전설 속 콜시츠키의 커피는 진한 커피에 우유 또는 크림과 감미료를 섞은 형태에 더 가깝습니다.

 

 

 커피와 초승달 모양 빵
콜시츠키의 이야기에는 초승달 모양의 빵도 자주 등장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빈의 제빵사들은 오스만군의 패배를 기념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을 본뜬 빵을 만들었습니다. 이 빵은 독일어권에서 키펠(Kipfel) 또는 회른헨(Hörnchen)으로 불렸으며, 훗날 프랑스의 크루아상과 연결되었다고 설명되기도 합니다.

또한 콜시츠키가 자신의 커피하우스에서 이 초승달 모양의 빵을 커피와 함께 제공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키펠은 1683년 이전에도 중부 유럽에 존재했던 빵이므로, 빈 포위전 이후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명 역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전설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전설과 역사적 사실의 구분
콜시츠키와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1683년 당시의 기록에서 직접 확인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빈 포위전 100주년 무렵인 1783년 가톨릭 성직자 고트프리트 울리히가 쓴 역사 서술을 통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콜시츠키가 오스만군의 커피 자루를 받아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고, 우유와 설탕을 넣은 빈식 커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형성된 영웅 서사로 평가됩니다.

콜시츠키가 실존 인물이었고, 1683년 빈 포위전에서 통역관 또는 연락원으로 활동한 사실은 비교적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개업했다는 주장이나, 비너 멜랑주와 크루아상을 처음 만들거나 보급했다는 주장은 문헌상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습니다.

현재 역사 자료상 빈에서 커피 판매 특권을 받은 초기 인물로 더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람은 아르메니아계 상인 **요하네스 디오다토(Johannes Diodato)**입니다.

결국 콜시츠키의 이야기는 정확한 창업 기록이라기보다, 오스만의 커피가 빈의 도시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커피 전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콜시츠키의 유명한 전설

게오르크 프란츠 콜시츠키 Georg Franz Kolschitzky는 오스만 언어와 복식에 익숙한 통역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683년 빈 전투에서, 오스만군이 빈을 포위했을 때 도시 안에서는 식량이 줄고 사기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콜시츠키는 오스만군 복장을 하고 포위망을 빠져나가 외부의 구원군에게 빈의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이후 다시 포위망을 통과해 빈으로 돌아와 구원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고 합니다.

1683년 9월 폴란드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연합군이 오스만군을 격퇴했고, 콜시츠키는 빈을 구하는 데 기여한 영웅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오스만 군이 퇴각한 뒤 낯선 콩이 담긴 자루들이 발견되었는데, 빈 사람들은 이를 낙타 사료로 생각해 버리려 했다고 합니다. 

콜시츠키는 그것이 커피라는 사실을 알아보고 자루를 받아 커피하우스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가 열었다고 알려진 가게 이름은 보통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Hof zur blauen Flasche
푸른 병 집/푸른 병 간판 아래의 집/블루보틀 커피하우스

 

Hof는 당시 빈의 건물이나 가옥에 붙이던 명칭이었습니다. 

 

설탕과 우유

콜시츠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오스만식 커피는 빈 사람들에게 너무 쓰고 탁하게 느껴졌습니다. 

콜시츠키는 커피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찌꺼기를 걸러내고, 우유나 크림을 넣었으며, 꿀 또는 설탕으로 단맛을 더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오스만식 커피보다 부드러운 빈식 커피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후대 비너 멜랑주 같은 우유 커피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커피는 오늘날 한국에서 말하는 휘핑크림을 올린 비엔나커피·아인슈페이너와는 다릅니다. 

전설 속 음료는 커피에 우유와 감미료를 섞은 형태에 가깝습니다. 

 

크루아상

콜시츠키 이야기에는 초승달 모양 빵도 자주 등장합니다. 

전승에서는 빈의 제빵사들이 오스만 군의 패배를 기념하여 오스만의 초승달을 본뜬 키펠·회른헨(프랑스에서는 크루아상으로 불림)을 만들었고, 콜시츠키가 커피와 함께 제공했다고 합니다. 

 

콜시츠키 이야기는 1683년 당시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1783년, 즉 빈 포위전 100주년 무렵 고트프리트 울리히가 쓴 역사서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후대에 만들어진 영웅 서사로 평가됩니다 

콜시츠키가 실존 인물이고 빈 포위전에서 연락원으로 활동한 것은 사실에 가까우나 

그가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었다는 주장은 문헌상으로는 확실치 않습니다. 

구분 요하네스 디오다토 게오르크 콜시츠키
역사적 위치 문헌으로 확인되는 최초 설립자 빈 커피 탄생 전설의 주인공
튀르키예 이스탄불 출신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 지역 출생
개업 연도 1685년 전설상 1683년 이후
장소 하르마르크트, 현재 로텐투름슈트라세 14 전설상 ‘푸른 병’
근거 황제의 영업 특허 기록 주로 18세기 후반의 이야기
대표 메뉴 커피·차·셔벗 전설상 우유·설탕을 넣은 커피

 

https://www.martinezfinecoffees.com/newsletters/jan-24-blue-bottle.html?utm_source=chatgpt.com

이 그림은 19세기 화가 프란츠 샴스Franz Schams가 후대 전설을 바탕으로 그린 석판화를 옮긴 것입니다. 

1862년 제작된 콜시츠키가 운영했다는 전설상의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표현한 그림으로 설명합니다. 

 

그림 중앙 오른쪽에 오스만풍 복장을 한 남성이 있습니다. 터번, 페즈 계열의 모자, 헐렁한 바지, 긴 조끼를 입고 커피를 권하는 인물이 바로 콜시츠키입니다. 콜시츠키의 복장은 그가 오스만어와 오스만 풍습에 익숙한 통역가였음을 표현합니다.  

콜시츠키 옆의 서양식 복장을 한 남성은 콜시츠키의 의상과 대비됩니다.. 이는 커피가 오스만 커피가 빈의 사교문화로 옮겨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중앙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은 커피하우스가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도 대화하고, 뉴스를 교환하며, 사교, 정치와 상업 정보의 공유 기능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샹들리에와 벽의 액자장식은 빈의 커피하우스는 오스만의 커피하우스와 달리 서양식 의자와 탁자가 있고, 유럽식 코트와 조끼를 입고 가발을 쓴 사람들이 잔을 들고 대화하는 유럽의 분위기를 가진 곳으로 묘사됩니다. 

 

단, 이 그림은 1683년의 정확한 현장이 아닌, 킨 커피문화의 창업신화를 시각화한 19세기 역사화입니다. 

 

 

 


이후 빈 커피하우스의 발전




디오다토의 독점권이 끝나갈 무렵 다른 아르메니아계 상인들도 커피하우스 영업권을 얻었습니다. 이후 빈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음료점에서 정보·사교·문화 공간으로 발전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빈 커피하우스에는 다음 요소가 자리 잡았습니다.

 

  • 여러 종류의 커피
  • 신문과 잡지
  • 당구대와 카드게임
  • 케이크와 페이스트리
  • 작가·음악가·정치인의 모임
  • 장시간 체류가 가능한 좌석
  • 웨이터 서비스
  • 물 한 잔을 커피와 함께 제공하는 관습

    1900년경에는 빈에 약 600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고 소개될 만큼 커피 문화가 크게 확산했습니다.

요하네스 디오다토 공원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현재 없지만, 요하네스 디오다토를 기념하는 작은 공원Johannes Diodato Park이 오스트리아 빈 제 4구 비덴Wieden에 있습니다. 

나무를 둘러싼 원형 휴식 데크와 벤치, 테이블, 작은 산책로와 녹지, 요하네스 디오다토를 설명하는 공원 안내판이 있습니다. 

공원 안내판에는 디오다토가 아르메니아계 인물이며, 본명은 오바네스 아스타우자투르Owanes Astauzatur이고 콘스탄티노플 출신으로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공원은 2004년 요하네스 디오다토를 기념해 명명되었으며, 최근에는 인근 학교와 연결된 개방형 휴식공간으로 다시 정비되었습니다. 

 


<참조>

https://web.archive.org/web/20080216074802/http://www.masis.at/archive/diodato/diodato.htm#Kaffee

https://www.martinezfinecoffees.com/newsletters/jan-24-blue-bottle.html